'경영난' 한진重마저도…통상임금 勞 편든 대법

입력 2019-05-03 16:47   수정 2020-11-22 16:09


경영난에 시달리는 한진중공업이 노조와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졌다. 통상임금을 재산정해 근로자에게 법정수당을 추가로 지급할 때 회사의 경영위기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법원이 사실상 배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와 다대포제작소 근로자 360명이 한진중공업을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원고 일부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고 승소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한진중공업은 2008년 8월 체결된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에 따라 근로자에게 2개월마다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채 각종 수당을 계산해 지급했다. 1·2심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은 맞지만, 추가 법정수당 지급은 장기 경영난 상태에 있는 피고가 예측하지 못한 지출을 하게 한다”며 신의칙에 따라 사측의 지급 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근로자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고는 2015년 이후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 유입이 원활해 추가 법정수당을 변제할 재원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며 근로자 측 요구가 신의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기업들은 지난 2월 대법원이 ‘시영운수 사건’에서 “신의칙 위배 여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새로운 법리를 제시한 이후 신의칙 적용을 배제하는 판결이 잇따르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경영상 위기' 인정 안하는 대법…통상임금 '10兆 폭탄' 결국 터지나

한진중공업이 대법원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하자 법조계와 재계에선 기업들의 ‘줄패소’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탄식이 나온다. 지난 2월 기아자동차 항소심 패소와 더불어 근로자 측의 통상임금 소급 적용 청구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법원이 추가 임금 지급으로 인한 경영 위기 가능성에 대해 사실상 자의적인 판단을 내리며 기업들의 불안감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 부담은 되지만 경영난 초래 안 해”

한진중공업 근로자들은 2012년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해 법정수당을 다시 계산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미지급 임금 청구 소송을 냈다. 하급심은 사측 손을 들어줬다. 2016년 2심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은 맞지만, 장기적 경영난 상태에 있는 피고가 예측하지 못한 지출을 하게 돼 신의칙에 위배된다”며 근로자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한진중공업이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큰 폭의 적자를 내고 있으며 조선산업 침체로 단기간 회복이 어려운 점 등 회사가 처한 녹록지 않은 상황을 고려했다.

한진중공업은 2016년 채권단 자율협약을 맺고 구조조정을 했다. 지난 3월 출자전환에 따라 대주주가 산업은행으로 전환되고 형식상 자율협약은 끝났지만 구조조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지난 2월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가 인천 버스회사 ‘시영운수 사건’에서 “근로자의 요구가 신의칙을 위반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대법원이 각급 법원에 사측의 경영난 주장을 신중히 받아들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린 셈이다. 1주일 뒤 기아차 근로자 2만7000여 명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신의칙을 부정하고 기업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한진중공업 상고심에서도 같은 논리로 원심을 뒤집고 신의칙 적용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재판부는 “추가로 부담해야 할 법정수당은 약 5억원으로 매년 매출 5조~6조원의 0.1%, 매년 지출 인건비 1500억원의 0.3%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2015년 말 기준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자산이 800억원 상당에 달하고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 유입이 원활하다”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경우 당초 예측하지 않았던 새로운 재정적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직접적으로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 재량 너무 크다”

법조계와 재계에선 사측의 신의칙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기업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사건에서 경영 위기 가능성을 판단하는 시점마저 일관되지 않다는 지적이다. 대법원은 한진중공업의 경영 위기를 판단할 때 매출은 소 제기 시점인 2012년부터를 기준으로 삼았다. 반면 현금성 자산이나 현금 흐름은 2015년 말을 기준으로 봤다.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일반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개별 사안에 천착해 1심 단독 재판부 판결문 같다”며 “재판부 재량의 여지가 너무 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판결이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판결문에 기재된 매출도 엉터리란 지적이 나왔다. 대법원은 한진중공업의 매출이 매년 큰 등락 없이 약 5조~6조원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했으나 한진중공업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매출이 1조~2조원에 그쳤다.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한 대기업 법무팀장은 “법원이 시영운수 판결 이후 지속적으로 소급해 지급해야 할 임금 규모를 이익이 아니라 매출과 비교한 것은 기업이 적자를 내더라도 통상임금 미지급분을 줘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고 말했다. 단순히 수치로 나타나는 경영성과로만 지급 여력 여부를 판단하기보다 해당 기업의 미래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하는데, 이번 판결에 이런 부분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게 아쉽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신연수/강현우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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